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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속의 재즈클럽, 그 곳에서 한국과 일본이 하나가 되다 >           - 한일저널 6월호 기재

2011
5 20일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한 미야자키에 간다.  도쿄나 오사카, 교토 등은 일본의 여러 곳을 가보았지만 미야자키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야자키는 일본의 남국이라는 데 어떤 느낌일까?  살짝 기대가 된다.

이번 출장을 가는 이유는
2011 8 28일 미야자키에서 개최하는 한일 Dance Festival in Miyazaki” 준비를 위해서이다.  이번 이벤트는 일본의 국제이문화교류협회(
國際異文化交流協會)에서 주최하는 데 카도가와 이와오(門川以和男)씨가
그 대표이다
.  카도가와씨는 일본에서 유명한 빅터레코드사에서 프로듀서로 수십년간 일했던 분인데 이제는 은퇴후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이벤트기획도 병행하고 있다.   나와는 올해 1월에 만나 의기투합해서 이번 미야자키 페스티벌에 한국측 프로듀서로서 참여하기로 했다.  



한일 Dance Festival in Miyazaki” 는 올해가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이 먼저 시작하지만 차츰 참가국 수를 늘려서 아시아, 더나아가 인터내셔널 문화 페스티벌로 키워나갈 예정이다.  이번 이벤트 내용은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댄스팀(플라밍고댄스, 스페니쉬댄스, 밸리댄스,한국고전무용 etc)이 공연을 하고 음악은 한국과 일본의 재즈아티스트로 구성된 재즈빅밴드가 담당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한국의 재즈 아티스트로서 현재 신예 재즈보컬리스트로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허소영씨가 참가하게 된다. 


23일의 이번 미야자키 출장에서 낮에는 8월 이벤트를 위해 두곳의 미야자키 방송국(MRT, UMK), 다양한 전문가그룹, 스폰서기업 등의 관계자와 미팅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미야자키에 있는 한 재즈클럽에서 미야자키의 대표 재즈뮤지션들과 함께 세션도 하고 그들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들의 재즈공연문화
, 재즈뮤지션과 관객들의 인간냄새나는 소통,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음악교류 등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번 컬럼은 이에 대한 경험과 소감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2011 5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미야자키공항에 오전 1140분에 도착을 했다. 서울에서 떠날 때에    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이윽고 도착한 미야자키에서도 가녀린 빗방울로 나를 맞이한다. 야자수가 즐비한 남국의 풍경에 가벼운   빗방울마저 더해지니까 더욱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겼다.  미야자키는 큐슈에 속한 현으로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남국을 연상케하는 자연으로 일본에서는 신혼 여행지로 손꼽힌다 


공항 검사대를 통과하니  일본측 대표 프로듀서인 카도가와씨가 마중나와있다.  4개월만에 재회다.
 

도착하자마자 카도가와씨와 함께 점심식사를 한 후 발빠르게 움직였다.  23일의 짧은 일정동안 많은 미팅과 일을 소화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 카도가와씨는 중간에 시간낭비가 없도록 이번 이벤트를 위한 관계자들과의 미팅스케쥴을 잘 잡아놓았다. 역시 합리적이고 꼼꼼한 일본인답다.  오후 5시까지 미야자키 방송국들을 돌면서 관계자와 수차례 미팅을 했다. 그 후 저녁시간에는 미야자키의 재즈클럽에 일정이 잡혀져있었다.



이 곳 미야자키에는 재즈클럽이
2곳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그 중 하나인 재즈클럽 폴레폴레(Pole Pole)” .  도심지가 아닌 전원적인 풍경속에 위치한 재즈클럽이었기에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 재즈클럽의 주인장은 미야조노씨로 드럼연주가이기도 하면서 이번 8월에 주최하는 댄스페스티벌에서 연주를 할 재즈 빅밴드팀의 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5년전에 이곳에서 재즈클럽을 1년 정도 시간에 걸려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외형도 매우 세련되어 있으면서도 주변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다.  하지만 아무래도 도시가 아닌 농촌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재즈클럽에 오는 관객수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서 재즈클럽옆에는 가라오케교실을 내어서 일반인의 노래교습을 수익원으로 하면서 운영을 하고 있다했다.  수강생들 중에서 처음에는 재즈를 잘 몰랐다가 가라오케교실에서 노래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재즈를 접하게 된다고 한다. 


오후
6시 좀 넘어서 폴레폴레(Pole Pole)” 에 도착했다..  그들의 요청으로 나도 게스트로 세션에 참가하기로 했기 때문에 리허설이 있었다. 재즈클럽 문을 열고 들어서니 3인의 재즈뮤지션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오니시 요스케(piano), 카미자키 미추루(guitar), 마츠자키 카요코(vocal)이 바로 그들로서 현재 미야자키를 대표하는 재즈뮤지션이다.  나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준다.

 


5 20 PM 7:00 손님이 조금씩 입장하기 시작한다.  공연하는 재즈뮤지션의 팬에서부터 초대되어서 온 사람, 가라오케교실 수강생들, 포스터를 보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얼추 50명 정도 그다지 넓지 않은 객석을 다 채웠다.

오니시 요스케(piano), 카미자키 미추루(guitar)씨가 올라와서 듀엣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들과 소통을 하면서 공연을 하는 풍경이다.   한국에는 사실 재즈클럽이 서울에 거의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활성화되어 있는 재즈클럽은 5~6곳에 불과하다.   홍대근처에 있는 에반스나 대학로의 천년동안도”, 그리고 압구정의 원스인어블루문에서 많은 재즈공연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일방적인 연주위주로 관객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곳 미야자키는 지역사회라는 이유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공연하는 재즈뮤지션이나 이를 관람하는 관객이나 하나의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관객과 나누면서 재즈연주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음악이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고 할까? 음악을 단지 특정한 때에 보러가는 대상만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서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연이어 미야자키의 대표 재즈보컬리스트 마츠자키 카요코씨가 무대에 오른다.  역시 미모의 여자보컬리스트가 부르는 재즈는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는 매력이 있다. 재즈스탠더드에서부터 팝, 일본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시종일관 사로잡는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한국에서 온 준(JUN)상입니다.”  게스트로 중간에 몇 곡을 보컬로서 함께 참여했다. 뜨거운 박수로 낯선 이국땅에서 온 남자를 응원해준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그들의 따사로운 눈길이 느껴졌다.

 


이렇게 모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돌아간 후 소위 일본식 뒷풀이가 펼쳐진다.  한국의 재즈클럽에서는 보지 못하는 광경이다. 이 곳 재즈뮤지션과 스탭들, 그리고 일부 친분이 있는 관객 등은 공연이 끝나면 남아서 꼭 늦은 식사를 함께 하고 술잔도 나누면서 이런 저런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음악이야기 등을 나눈다고 한다. 그 날은 재즈클럽 스탭과 공연 응원차 온 다른 재즈뮤지션들이 함께 만든 크림스튜가 메뉴였고 일본식 소주와 와인을 곁들였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역시 이 행위는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데 매우 좋은 방식이다.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나도 낯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동화되었다.  이런 즐거운 시간이 거의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지속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엔딩 사진을 함께 찍었다.

 


미야자키는 지방이고 재즈클럽
폴레폴레(Pole Pole)”가 위치한 곳은 어찌보면 시골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시골의 재즈클럽이란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시골에 이렇게 멋진 재즈클럽이 있고 또 이 곳에서 이렇게 음악과 사람들의 아름다운 소통이 일어난다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뒷풀이가 끝나고 숙소인 호텔로 가기위해 재즈클럽밖으로 나왔을 때 더욱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캄캄한 밤하늘이 시야에 펼쳐진 것이다.  서울에서 재즈클럽을 나오면 휘황찬란한 술집 네온사인과 휘청거리는 취객들이 넘실대는 데 이 곳은 마치 무공해 유기농 자연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삶과 예술은 어쩌면 닮아있는 지 모른다. 소박한 미야자키의 자연을 닮아있는 미야자키 재즈뮤지션의 재즈선율을 들으면서 또 그들이 스타로서의 뮤지션이 아닌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앞으로 이들과 한국의 재즈뮤지션과의 교류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도쿄의 세련된 재즈뮤지션과의 교류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때묻지 않은 무공해 자연속의 미야자키 재즈뮤지션과의 교류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눈빛에서 한국 시골의 인심좋은 옆집 아저씨같은 정겨움과 따스함을 읽을 수 있었다
. 1년에 3~4차례 서로 초청해서 오고 가면서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만들자고 이들과 뜻을 모았다.  서울과 미야자키 밤하늘에서 펼쳐질 한일 재즈뮤지션들의 음악과 삶의 이야기, 생각만 해도 멋지고 행복하다.  그 때 독자 여러분들도 꼭 보러와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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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변경안내
주소 :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412-24 현대빌딩 4층 
         <Olive 400>
TEL : 02-6465-7346

합정역 6번출구에서 나와서 계속 직진 --> 농협 은행에서 왼쪽골목으로 직진 --> 김치찌개식당에서 우회전해서 직전 --> Olive 400 도착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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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인맥(Twitter&facebook) 1만명만들기

 

첫정모를 개최합니다!

 

[한일트위터인맥 1만명만들기]회원이 770명을 돌파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회원이 많아졌고, 커뮤너티운영에 보다 체계적이고 내실을 기할 필요성을 느껴서 정모를 개최합니다.

 

한일 트위터인맥 일만명만들기 à http://bit.ly/9kn6xF

한일 페이스북인맥 일만명만들기 à http://bit.ly/9gQNxJ

 

개요 :

한일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는 한국인, 일본인들의 교류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정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온라인상에 한일간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오프라인의 만남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합니다.

 

장차 앞으로 한일문화 & 비즈니스교류,  일본관련 정보, 지식교환을 자체적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모임으로 진화시켜나갈 계획입니다.


 


한달에 1번 정도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몇 개월에 한번씩은 파티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날은 첫 정모이므로 서로 자기 소개와 친목도모를 위한 자리를 갖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진행을 위해서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 아이디어도 함께 나눕니다.

 

선릉 토즈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좌석확보 때문에 선입금하신 분에 한해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청마감은 11월 17(수) 까지이고 좌석예약은 최대 30(선착순)으로 받겠습니다.


날짜 : 2010년 11월 23일 화요일
시간 : PM 7:30 ~ 9:30

장소 : 선릉 토즈 (02-2052-0113)
--> http://bit.ly/azAL6O
**
도착하시면 "한일인맥만들기"라고 말씀하세요^^

입금계좌 : 신한은행 110-143-950734  (예금주 : 전진용)

회비 : 1만원

 

신청하기 -->  http://twtmt.com/cards/4606



운영진을 모집합니다!

 

[한일인맥 1만명만들기]에서 열정있고 능력있는 운영진 스탭을 찾습니다.

서로 함께 성장하고 도움을 주고, 미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해나갑니다.  가능하면 한일간의 일을

하시고 계시는 분이나 관련 전공자가 지원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비록 일본을 잘 모른다하더라도 성실과 강렬

한 열정코드를 가지고 계신 분은 환영합니다^^.

 

한일인맥만들기 모임은 세미나(or 스터디)와 파티(or 공연, 이벤트), 이 두가지 코드를 가지고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번 모임을 주재하는 저는 그동안 각종 한일포럼, 세미나개최와 한일음악공연기획 등의 진행을 해왔습니다.

à http://www.copanea.com/

2010년 한일축제한마당 자원봉사팀장으로도 활동을 했습니다. à http://kjfestival.tistory.com/

 


앞으로 함께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할 수 있는 형태로 한일인맥만들기 모임을 진행해나갈까 생각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고 함께 해주실 능력있는 분들의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운영진으로 참가하시게 되면 각 분야의 전문가, 기업가, 직장인, 대학생들로 구성된 운영진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져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할 각종 세미나와 파티에 참가하는 한일간의 다양한 전문가, 기업가, 예술가들을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며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일회성 단기간 만남이 아닌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룹으로서 서로의 전문영역을 발전시켜나가고

각자 부족한 점을 상호보완하며 함께 성공할 수 있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기반이 다져지면 차츰 프로젝트도 진행할 예정이므로 운영진은 보다 많은 기회를 먼저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운영진으로서 본인의 전문영역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본 모임의 다양한 활동상황이 온라인에

다각적으로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etc) 노출이 되므로 본인을 알리고 브랜딩해 나가시는 데도 도움이

되실 수 있습니다.


신청은 11 19일까지만 받겠으며 1차 서류 합격자에 한해서 전화인터뷰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운영진 수가 채워지면 중간에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지원하실 분은 늦지않도록 그 전에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운영진으로 지원하실 분은 다음을 작성해서 copanea@naver.com 으로 보내주세요^^

 

1.    성명 / 성별 / 생년월일

2.    핸폰번호 / 이메일

3.    지원분야 : 기획 / 운영 및 진행 / 회계 / 회원관리 / 홍보마케팅 / etc

4.    본인의 현재 직업 (학생인 경우는 전공)

5.    자신의 전문분야 (현재 or 미래에 꿈꾸는..) 

6.    자신의 꿈 / 목표

7.    가능한 언어(/ /기초회화가능) : 일본어, 영어 etc

8.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셜미디어 : ex)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etc

9.    자신의 관심분야 (특기/ 취미)

10.  이번 운영진활동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 혹은 경험하고자 하는 것

11.  내가 생각하는 일본이란 ? / 나와 일본과의 관련성 (혹시 있다면)

12.  아래 영역 중에서 관심있는 분야 :

 

일본전문가양성그룹

한일온라인교류그룹(소셜미디어 /스마트폰 /etc 스터디)

한일무역비즈니스그룹

한일문화교류그룹(파티/공연/이벤트/ etc 기획)

한일여행그룹

북세미나그룹(독서그룹)
한국어, 일본어스터디그룹
영어스터디그룹
 

본인의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고 싶으신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지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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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우 호기심이 일었다.    새로운 아르바이트처를 찾고 있던 터라 일단 가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가즈오와 함께 그 식당이 있는 전쳘역으로 갔다. 그 곳은 내 학교로부터 30분가량 떨어져있었다.  

 

Boston 의 중심으로 볼수 있는 Cambridge 시에 속해있었고 하버드와 MIT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역이었다.  (참고로 우리 학교에서 찰스강 다리하나 건너면 MIT가 있다)




보스톤에 있는 지하철 MBTA .  보스톤 시내 왠만한 곳이면 이 전철로 다 갈 수 있었다.  

서울 지하철에 비교한다면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질 정도로 귀엽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
좀 더 사람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




역에서 내려서 2분정도 걸어가니 왠 빌딩이 나온다

현관을 통과해 들어가니 아니 이건 뭐야~~ 사방에서 일본말이 들린다.   연이어 내 눈에 익숙한 스타일의
다양한 샵들과 가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미국안에 작은 일본에 온 것처럼 1층에는 일본관련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재패니즈 타운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일렬로 좍 늘어선 일본식당가와 일본비디오 대여점, 일본식 생선가게, 일본식 채소가게, 일본 옷가게 등 분야별로 다양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학2학년때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처럼  신기하게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며 가즈오를 따라 일본식당가안으로 들어갔다.   가즈오가 일하는 식당은 맨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후 1시경이었는데 벅적대는 손님들과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주문, 몇 명이 파란색 앞치마를 두르고 약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좁은 공간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잘 짜여진 톱니바퀴처럼 주방안에서 손발이 착착맞게 움직이는 두명의 남자와 만들어진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재빠르게 손님의 테이블로 나르고 있는 20대초반으로 보이는 여자와의 호흡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이윽고, 운동모자를 쓰고 있는 30대후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이 식당 주인장이었다.

 

가즈오군에게 이야기는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뒤쪽 비어있는 테이블에 안내하더니 앉아서 이것 저것 설명해준다.  

 

주인장은 일하는 시간대, 등급별 페이수준, 지켜야 할 수칙 등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 적혀져있는 프린터를 주면서 일본인 특유의 깔끔한 말투로 꼼꼼히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인이 아닌 것을 의식하는 눈치다.  나는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머리속에 어느 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이미 결심이 선 것이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겠어요?”  “다음 주부터 나오겠습니다”  나는 차이나타운의 식당일을 정리해야 했으므로 양해를 구했다.

 

그리곤 온 김에 식사나 하고 가라며 뭘 먹겠냐고 물어본다.  적당히 주세요하니까 안에서 일하던 남자중 한 친구가 금새 가츠돈을 만들어 주었다.  정말 맛있었다.    앞으로 이 음식을 내가 만들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호기심과 신선한 기분이 고개를 들었다.

 

전에 일했던 두 식당과는 비교가 안되게 파닥파닥 뛰는 생선처럼 활기가 넘치는 그 일본식당이 왠지 모르게 강하게 끌렸다.


 

나는 때로는 이성적인 판단력보다 육감적인 감각의 판단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그 때 그 순간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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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모든 한국 유학생에게도 너무나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서로 볼 때마다 치솟는 환율수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인사처럼 되었었고

집에서 유학자금을 받으며 공부하던 친구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전보다는 거의 두 배가 된 수업료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기에 당시 학업을 접고 한국에 들어가는

학생들만 해도 전체 한국학생의 1/3 을 차지했다.  나중에는 학교 측에서도 이런 위기적 상황을 인식하고

학비를 분할로 내게 한다든가 하는 조치를 취해주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한국에서 부도내고 미국으로 도망쳐와 갈 곳이 없어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의

자취방에 도피해서 함께 산다던가,   꽤 잘 살았던 집안에서 유학을 와서 아주 상류급 생활을 하고 있던

여학생이 아버지가 대기업임원에서 잘린 후  돌아오라는 말을 거부하고, 소위 미국에 있는 한국식 룸살롱

에서 호스테스로 일하며  그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등 여러 가슴 아픈 사연이 주변에서 들리곤 했다.

 

 

나는 어차피 한국에서 돈을 받아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돈이 바닥을

드러내어가는 현 시점에서  나 또한 뭔가 타결책을 내놓지않으면 안될 순간이 온 것이었다.

 

다행히 그 때 한국에서 대학 때 학점을 꽤 인정받고 들어왔고(주로 교양과목),이 곳 학점도 꽤 따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풀타임제가 아닌 파트타임제로 학점을 들을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아마 나도 계속 풀타임제를 들어야 할 상황이었다면 한국에 돌아왔어야

했을 것이다.  사립학교였던  우리 음대의 엄청난 학비를 도저히 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트파임제라면 내가 들을 과목 몇 개만 신청해서 계속 공부할 수 있기에 마련된 돈을 적절하게

조율만 잘하면 졸업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타이밍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이 말이
내 마음에 와닿게
했다. 

 

사실 난 단 한번도 내가 원하는 이 음악대학을 졸업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당연히 졸업하고

게다가 맘껏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듬뿍 원하는 것을 얻어서 귀국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어왔다.   

 

이런 나에 대한, 또 나의 미래에 대한 대책없는 무대뽀적인 믿음이 가져온 선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감사함도 잠시 접어두고, 나는 이 생각이 실현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구체적인

계획을 다시 짜야 했다. 

 

우선, 우리 학교는 일년이 3 학기로 나뉘니까 우선 한 학기는 휴학을 해서 풀타임으로 일해 학비를  

벌어놓는다그리고 그 돈으로 나머지 두 학기의 학비를 대면서 두 학기는 생활비만 버는 정도로 일을

하고 나머지시간은 공부에 집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면서 또 일도 원할 때 많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방에다가 아르바이트자리를 부탁해놓고 마치 하이에나처럼 어디 돈벌 때 없나 전전긍긍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다.

 

그러던 차에 편의점의 캐쉬어,  학교내 아르바이트,  한국식당서빙 등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식당일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식사비를 아낄 수가 있고 영양보충을 실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사실 유학생활하다보면 먹는 게 부실해지기 쉽다.  먹는 것을 무시하다가 건강을 잃으면 그 것처럼

유학생활에 치명적인 것은 없었다.

 

 

따라서 먹는 것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매끼 외식하면 감당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일일히 만들어먹는다면

그 것 또한 금쪽 같은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학교내 아르바이트와 한국식당서빙을 선택했다. 

 

 

 하지만, 학교내 아르바이트는 용돈수준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식당도 손님이 별로 없어 매우 어려워했다. 

IMF 의 영향을 받은 유학생들은 전에는 자주 가서 사먹던 한국음식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손님이 별로 없으니 일할 시간도 많이 주지않았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도저히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로

벌기 어려울 것 같아 한달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곧 차이나타운에 있던 홍콩사람이 운영하는 일식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차이나타운을 지나가다가

써붙인 구인광고난을 보고 들어가 면접을 봤는데  이제 갓 생겨난 퓨젼풍의 일식집이었다.   일식도 팔지만

 중식도 약간 섞어서 파는.. 어떤 메뉴는 한국적인 요리도 있었다.

 

당시 IMF로 아르바이트를 하고자하는 한국인이 많았는데 이 식당에도 벌써 여러 명의 한국인이 면접을

보고 간 것 같았다.   최종적으로 내가 선택이 되었는데 그 것은 한국어 뿐만 아니라 일어도 가능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많은 손님들이 한국인과 일본인이었기에..

 

 

그 일식집은 매우 독특한 인적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은 홍콩사람, 종업원은 중국인, 주방장과

주방보조, 그리고 주인의 와이프는 한국인이었다.  따라서, 일도 일이지만 일하는 사람들간에 원활한

컴뮤니케이션이 되질 못했다.

 

 

중국인들은 주인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하고  주방에 있는 한국인은 그 사람대로 주인과 종업원에 대해

이중으로 갈등을 갖고 있었다.   돈은 저번 한국식당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일에 대한 스케쥴도

조정하기가 까다로웠고 학비를 마련할 만한 어느 정도 일하는 시간의 확보 역시 앞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트러블에 나는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일한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어느 날,   학교에서 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였던 가즈오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
,  나와 함께 일본식당에서 일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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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에 5월말에 도착해서 6월의 여름학기부터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8년 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얻은 기회였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그 동안 타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를 모두 버리고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내 온연한 선택에 의해서
첫 발을 내딛는 나 만의 길..     그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은 별 중요하지 않다.     

존재지워지는 가  내 스스로 존재하는 가  

세상을 사는  이 2가지 방식에서 적어도 난 스스로 선택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날을 기념으로 난 내 이름을 새로 짓기로 했다.    준(JUN) 이라고 명명했다.

원하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6월(June)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일본, 미국 모두 다 존재하는 이름이라는 국제적 통용성이었다.



그 후 1년 반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연습실안 피아노 한대와 그 앞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아침에 보는

 하늘과 밤늦게 보는 하늘 이 것이 다였다.  

 

 

그동안 맺힌 것을 한풀이 하듯이 원없이 피아노만 처댔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20대 초반에 거의 프로수준에 오른 친구들이 수두룩한 이 음악학교에서 30살에 가까운 다 늦은 나이에 죽을둥 살둥 열심히 한다는 것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내 피아노실력이란 그들에겐 새발의 피의 피만도

못한 것임에는 삼척동자도 다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을 너무 사랑했고 또 감사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어하는 것을 8년에 가까운 반대의

세월을 인내하고  비로소 시작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난 죽을 때 눈뜨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만큼은

안하게 된 것이다.

 

 

피아노연습실에서 또 강의실에서 그렇게 나는 꿈과 같이 음악에만 푹빠져 1년 반을 지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미셀 카밀로(Michel Camilo).   그는 쿠바출신으로 미국에서 테크닉과 예술적 감성 거의 전 부분에서 완벽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라틴리듬을 근간으로 한 그의 음악은 에너지 그 자체이다!!


 

전 세계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 곳에 모여든 학생들,   학교 로비에 있다보면  정말 인종의 도가니를

느끼게 할 만큼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온갖 인종들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영어가 아닌 음악이란 또

다른 위대한 언어로 왕성하고도 치열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또 나는 일어가 가능했기에 일본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 들과 함께 연습하고

공부하고 때로는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유명뮤지션의 공연도 서울 시내의 영화를 보러가듯, 값싸게

보러가면서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꽤 벌어갔다고 생각했던 자금도 1년이 넘어갈 때쯤 거덜이 나기시작했다. 보스톤이 워낙 물가가

비싸고 학교 학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버는 돈은 전혀 없었고.. 

 

게다가 기고만장했던 한국에 벼락 같은 찬물을 끼얹었던 그 이름하여 IMF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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