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에 5월말에 도착해서 6월의 여름학기부터 수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8년 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얻은 기회였다. 단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그 동안 타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를 모두 버리고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내 온연한 선택에 의해서
첫 발을 내딛는 나 만의 길.. 그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지금은 모른다.
하지만, 그 것은 별 중요하지 않다.
존재지워지는 가 내 스스로 존재하는 가
세상을 사는 이 2가지 방식에서 적어도 난 스스로 선택한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날을 기념으로 난 내 이름을 새로 짓기로 했다. 준(JUN) 이라고 명명했다.
원하는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6월(June)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
일본, 미국 모두 다 존재하는 이름이라는 국제적 통용성이었다.
그 후 1년 반동안 내가 기억하는 것은 연습실안 피아노 한대와 그 앞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아침에 보는
하늘과 밤늦게 보는 하늘 이 것이 다였다.
그동안 맺힌 것을 한풀이 하듯이 원없이 피아노만 처댔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20대 초반에 거의 프로수준에 오른 친구들이 수두룩한 이 음악학교에서 30살에 가까운 다 늦은 나이에 죽을둥 살둥 열심히 한다는 것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내 피아노실력이란 그들에겐 새발의 피의 피만도
못한 것임에는 삼척동자도 다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을 너무 사랑했고 또 감사했다. 내가 진정 하고 싶어하는 것을 8년에 가까운 반대의
세월을 인내하고 비로소 시작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난 죽을 때 눈뜨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만큼은
안하게 된 것이다.
피아노연습실에서 또 강의실에서 그렇게 나는 꿈과 같이 음악에만 푹빠져 1년 반을 지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미셀 카밀로(Michel Camilo)다. 그는 쿠바출신으로 미국에서 테크닉과 예술적 감성 거의 전 부분에서 완벽한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라틴리듬을 근간으로 한 그의 음악은 에너지 그 자체이다!!
전 세계에서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이 곳에 모여든 학생들, 학교 로비에 있다보면 정말 인종의 도가니를
느끼게 할 만큼 다양한 나라, 다양한 민족, 온갖 인종들이 넘실거리고 있었고, 영어가 아닌 음악이란 또
다른 위대한 언어로 왕성하고도 치열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다. 또 나는 일어가 가능했기에 일본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 들과 함께 연습하고
공부하고 때로는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유명뮤지션의 공연도 서울 시내의 영화를 보러가듯, 값싸게
보러가면서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나 꽤 벌어갔다고 생각했던 자금도 1년이 넘어갈 때쯤 거덜이 나기시작했다. 보스톤이 워낙 물가가
비싸고 학교 학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버는 돈은 전혀 없었고..
게다가 기고만장했던 한국에 벼락 같은 찬물을 끼얹었던 그 이름하여 IMF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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